패션브랜드에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향숙이 예뻤다.” 영화 ‘살인의 추억(봉준호 감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입니다. 어리숙한 살인 용의자인 광호(박노식 분)가 향숙이를 말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또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스포츠의류 브랜드인 나이키 운동화의 짝퉁인 ‘나이스 운동화’를 받고 좋아하는 광호의 모습입니다. 이때 ‘나이스 운동화’는 영화 속의 긴장감을 웃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

198~90년대 초(초등학교)중학교에서 나이키 로고가 박힌 운동화를 신었다면 모든 아이들의 우상이 되었을 만큼 나이키 운동화는 값비싼 제품이었습니다. 나이키 로고가 박힌 짝퉁 운동화인 ‘나이스’ 운동화도 시장에서 인기를 끌 정도였습니다. 부메랑처럼 생긴 로고에 대한 집착이 '나이스 운동화'까지 만들게 한 것입니다. 

나이키를 떠올리면 마치, 하늘로 날아갈 듯한 나이키의 로고의 연상이 필터 작용 없이 바로 생각납니다. 그만큼 로고는 나이키의 얼굴입니다. 이렇게 멋진 나이키 로고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알아보려면 나이키 탄생 스토리를 알아야 합니다. 

®나이키

1964년 미국 서부 오리건 주 포틀랜드 근교에 있는 오리건 대학 육상부 코치였던 빌 보워만(Bill Bowerman)은 선수들이 좀 더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는 운동화 개발에 골몰했습니다. 보워만은 신발제조업체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운동화 제품을 제작 의뢰했으나 모두 거절당합니다. 그래서 그는 직접 운동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운동화를 직접 제조하기로 마음먹은 보워만은 운명의 파트너를 만납니다. 당시 오리건 대학 육상선수를 지낸 필 나이트(Phil Knight)는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서 일본 운동화 수입 유통에 관한 논문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식스 전신인 오니츠카 타이거 회사를 접촉해 미국 내 독점 판매권을 따내게 됩니다. 논문에 적은 자신의 이론을 옮겨 실제 일본 운동화를 수입한 것입니다. 

나이트는 보워만에게 일본에서 받은 샘플 운동화에 대해 상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1964년에 나이키 회사의 전신인 ‘블루 리본 스포츠’를 설립합니다. 각자 500달러씩 낸 자본금으로 일본제 운동화 300켤레를 수입해 팔기 시작했습니다. 첫 해 그들은 자동차 트렁크에 운동화를 싣고 다니며 1300켤레를 팔아 8000달러 매출을 올립니다. 당시 일제 운동화는 가격대비 품질이 우수해 폭발적인 판매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사업 2년 만에 캘리포니아 주 산타모니카에 첫 매장을 개장합니다. 이듬해 동부지역까지 진출합니다. 

®나이키, 나이트와 보워만

1971년 나이트와 보워만이 만든 블루 리본 스포츠는 오니츠카 타어거와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자체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보원만이 일본 제품보다 더 가볍고 탄력 좋은 운동화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연구한 결과, 수입제품에 뒤축 폼 쿠션 디자인 등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했습니다. 이게 바로, 독특한 와플 모양의 발판인 나이키의 ‘코르테즈’입니다. 

나이키 코르테즈

부메랑 모양의 나이키 로고는 이때 탄생합니다. 새로운 로고가 필요했던 두 사람은 포틀랜드 주립대 여학생 캐롤린 데이비드슨에게 로고 디자인을 맡겼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로고는 역동적인 움직임이 담긴 디자인이었습니다.) 용역 대가로 시간당 2달러를 주기로 했습니다. 며칠 후 데이비드슨은 총 35달러 청구서와 함께 로고 시안 여러 개를 들고 왔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장 운동화와 상자에 인쇄할 로고가 필요했던 두 사람은 부메랑 로고를 선택합니다. 당시, 나이트는 보워만에게 “별로 맘에 들지 않지만 갈수록 점점 좋아질 것 같다”고 합니다. 

수십억 달러의 로고가 한 여대생의 손을 거쳐 단돈 35달러에 탄생한 것입니다. 'swoosh'라 불리는 나이키 로고는 승리의 여신 '니케(Nike)'의 날개를 옆에서 본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알려졌습니다. 나이키의 설명에 따르면 이 로고는 니케의 영혼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나이키 로고는 1971년부터 자잘한 변화를 거쳐 현재는 NIKE 글자가 달린 버전과 안 달린 버전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이키 이름 역시 그리스 신화 속 승리의 여신인 ‘니케’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나이키(Nike)'는 ‘니케(Nike)’의 영어식 발음으로 스펠링이 동일합니다. 니케는 티탄 신족인 팔라스와 저승에 흐르는 강의 여신 스튁스(Styx)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등에 커다란 날개가 있고, 종려나무의 가지와 방패를 가진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 42.195㎞를 달린 그리스 병사가 기도드린 대상으로도 유명합니다.

플리커, 니케 동상

나이키는 계속해서 성장해서 세계적인 운동화 브랜드가 됐습니다. 이후에 ‘나이키 로고 디자인 비용을 너무 낮게 책정했다’라는 뒷이야기가 돌았다고 합니다. 데이비슨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당시 시세로 합당한 가격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플리커, 나이키 로고

나이키 나이트 회장은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1983년 9월 나이트 회상은 고위 임원들과 함께 데이비슨을 오찬에 초대했습니다. 이때 나이트는 스우시 형태의 금반지와 나이키 주식 500주를 데이비슨에게 선물했습니다. 당시 나이키의 주당 가치는 150달러로, 총액이 7만 5000달러에 달했습니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64만 달러에 가까운 금액입니다. 데이비드슨은 이후에도 나이키 회사의 각종 디자인을 맡았다고 합니다. 

*나이키 로고에 관련한 에피소드 

축구선수가 나이키 로고 세레머니로 한화 6000만 원을 벌금을 낸 일이 있습니다. 2017년 4월 2일 도르트문트 소속 피에르 오바메양이 샬케와의 경기에서 득점 후 마스크 세레모니를 펼쳤습니다. 당시 오바메양은 자신의 개인 스폰서인 ‘나이키’ 프로모션 일환으로 제작된 마스크를 쓰고 나이키 모양을 그리며 경기장을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나 도르트문트의 공식 스폰서는 푸마였습니다. 오바메양은 벌금으로 5만 유로(6000만원)을 지불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명문 클럽 첼시는 아디다스 대신 나이키를 선택해 엄청난 금액의 대가를 받았습니다. 첼시는 2017~18시즌부터 선수단이 입을 유니폼과 용품을 독점 공급받는 조건으로 2032년까지 매년 6000만 파운드(836억 원)를 받기로 했습니다. 기존 첼시의 공식 스폰서는 아디다스였습니다. 첼시는 아디다스와 결별을 선택해 향후 15년간 9억파운드(1조 2550억 원)에 이르는 수익을 확보한 것입니다. 스페인 명문 구단 바르셀로나는 나이키로부터 연간 1억 2000만 파운드(1673억 원)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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