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 누구? #우병우 사법시험 #우병우 처가 #우병우 노무현 대통령 

우병우는 누구? (본 사진은 해당 기사와 무관합니다.)

소년등과(少年登科), 소년급제(少年及第)를 하면 부득호사(不得好死)라고 했다. 너무 일찍 최고의 자리에 오르거나 잘나가면, 나이가 들어 못나가거나 좋지 않다는 뜻이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두고 일각에서 ‘소년급제’라는 말을 쓰는 이유도 이런 연유에 있다. 

만 20세의 나이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우병우 전 수석이 검찰 내부에서 출세 가도를 달리다가 잠시, 주춤하다 싶더니, 청와대에 입성해 막강한 권력을 잡았다. 하지만, 지금은 대중으로부터 비난의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다. 

우 전 수석은민정수석으로 근무하면서 최순실 씨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을 알면서 묵인, 방기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과 최씨 주도로 설립된 미르·K스포츠재단을 내사한 이석수 전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의 감찰을 방해하고 해임되도록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또 청와대 지시를 거부한 문화체육관광부와 공정거래위원회 소속 공무원들을 감찰한 뒤 인사에 개입해 현직으로 이동시키거나 퇴직을 종용한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우병우는 누구?

‘1987년 만 20세의 나이로 제 29회 사법시험에 최연소 합격’ 서울대 법대 84학번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화려한 타이틀이다. 그는 대학 입학 1년 만에 사법고시를 합격할 정도로 수재였다. 

우 전 수석이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크게 알린 계기는 2009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앙수사1과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맡았을 때였다. 그 당시 노 전 대통령을 직접 대면 취조하며 ‘독종 검사’로 불리기도 했다. 

우 전 수석은 검찰 재직 시 ‘특수통 칼잡이’라는 별명으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 수사기획관 등 검찰 요직을 거치는 등 특수부 계통에서 근무했으며, 검찰 내부에서 출세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지난 2012년과 2013년 연이어 검사장 승진에 실패하면서 옷을 벗었다. 

우 전 수석은 박근혜 정부 2년 차인 2014년 5월 민정수석실 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한다. 다시 권력을 잡으며 화려한 부활을 했다. 2015년 1월 인사개편에 따라 민정수석실 수석비서관으로 승진해 사정기관의 통제를 시작했다. 유례없는 승진이었다. 

특히 우 전 수석은 또 '정윤회 사건'을 깔끔하게 처리하면서 ‘리틀 김기춘’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처가가 수천억대 자산가였던 고 이상달 전 정강중기 회장의 집안으로, 우 전 수석은 가족 회사 공금 유용, 허위 재산신고 등 각종 비위 의혹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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