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디자이너 인터뷰] 강성도 디자이너

[편집자 주] 한국은 패션의 변방이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요건인 ‘의식주’ 중에서 오랫동안 우리나라는 ‘식’과 ‘주’의 결핍으로 ‘의’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패션이라는 단어가 ‘입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스타일’까지 확장됐다. 이 가운데 국내 신진 패션디자이너들이 브랜드를 론칭하며, 전 세계에 한국의 패션을 알리고 있다. 이에 <스타패션>은 한국의 패션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신진디자이너들을 연재 인터뷰한다.

[스타패션=김대견 기자] “어렸을 땐 불행아, 지금은 행운아.” 명쾌한 한 마디로 자신의 삶을 정의내리는 패션디자이너 강성도. 그는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4(이하 프런코4)에 출연해 배우 김수현을 닮은 외모와 청각장애우라는 유례없던 캐릭터로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다. 아쉽게 탑3 안에 들지 못하고 중도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셨지만, 그의 힘찬 행보는 계속 진행 중이다.

 

기자는 지난 21일 그의 인기를 피해(?) 옥수역에 위치한 한 커피숍에서 강성도 디자이너를 만났다. 강 디자이너는 주먹만 한 얼굴에 8등신은 돼 보이는 비율, 리젠트 스타일로 올린 헤어와 뽀얀 피부, 구름을 담은 티셔츠에 네이비 반바지를 입고 등장했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글레디에이터 샌들과 선글라스, 독특한 팔찌 등 모델 같은 외모와 패션센스는 방송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시원한 에어콘 바람과 함께 팬을 자처하는 카페 직원이 수줍은 미소로 우리를 맞이했다. 커피를 주문하는 내내 뚫어져라 그를 쳐다보는 직원은 결국 싸인을 요청했다. 연예인 못지않은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순간 기자는 ‘아차’ 싶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의사소통에 문제가 될까 걱정을 하고 나왔는데 기자는 이미 자연스럽게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쩌면 발레리노가 됐을지도 몰라요”

강성도는 왜 패션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선택했을까. 그는 처음부터 패션디자이너를 꿈꾼 것은 아니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그의 미래를 걱정하시던 부모님이 어느 날 그를 불러 유학을 권유했고, 그렇게 세계 3대 디자인 스쿨에 손꼽히는 ‘파슨스’에 입학하게 된 것이 지금의 패션디자이너 강성도가 만들어진 계기가 된 것이다.

“어쩌면 발레리노가 됐을지도 몰라요. 귀가 들렸다면 말이죠(웃음). 혹은 평범하게 살았을지도 모르고요.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발레를 자주 보러 다녔거든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고개를 갸우뚱하는 기자를 보며 그는 말을 이어갔다. “(웃음) 발레의 움직임과 무대 컬러 그런 것들을에 관심이 갔죠. ‘백조의 호수’ ‘호두깎기 인형’ 등 참 많이도 봤어요. 그 당시에 시각적인 감성이 많이 발달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했지만, 그것보단 무언가를 만드는데 소질이 있었어요.” 라고 덧붙였다.

단지, 소질만으로 그의 인생이 순탄할 리는 없었을 터. 그는 청각장애우임에도 한국 수화를 구사하지 못한다. 이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혹독한 교육 때문이다. 과자 웨하스를 입에 물고 발음연습을 했던 것은 이미 너무 유명한 그의 일화가 됐다. “어렸을 때는 참 많이 울었어요. 왕따도 당하고 외국 가서도 말이 안 통해서 너무 힘들었어요.” 기자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래서 성격이 되게 소심하고 그랬는데 패션공부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어요. 패션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니까. 사람마다 스타일이나 색깔이 어떤지 알아야 하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성격이 많이 바뀌게 됐어요. (정확히) 25살 때부터 성격이 활발해진 것 같아요. 만약 패션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도 없었겠죠?”

 

 

“내 꿈이 갑자기 물거품이 된 기분이었어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강성도가 탈락할 줄은. 프런코4가 진행될수록 그의 인기는 하늘 높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11회에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당연히 탑3에 들어갈 줄 알았어요(웃음) 순간 멍해져서 아무 생각도 안 들었어요. 내가 왜 탈락했는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방송에선 웃어 보였지만) 정작 돌아갈 때는 속상했어요. 더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진 것 같아서…. 내 꿈이 갑자기 물거품이 된 기분이었어요.”

당연히 탑3에 들어갈 줄 알았다니? 부드럽고 섬세할 것만 같던 그의 내부에 자신만의 강한 고집과 확신이 자리하고 있음이 전해져왔다.

아쉬운 탈락도 잠시 그는 바로 ‘강성도의 리얼웨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내비쳤다. “처음에는 정말 할 생각이 없었어요. 작년 12월쯤 프런코4의 촬영이 끝났으니, 3개월을 쉬고 4월쯤이었나? 섭외 제의가 들어왔어요. 작가의 끝없는 요구에 두 손 두 발을 들어 버린 거죠. 재미있었어요. 4주 동안 촬영을 한 것 같은데 스텝들과 동고동락했어요. 너무 시간에 쫓겨서 촬영한 것 같아 아쉬웠어요. 배우 김정민 씨 치마를 만들어 주는 시간이 있었는데. 꽃무늬 200개를 직접 손으로 만들다 보니 막내 작가, 피디 등 모든 스텝이 함께 거들었죠.(웃음)”

리얼웨이의 방송으로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면서 브랜드와의 디자인 콜라보레이션 제의나 모델제의 등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다는 강성도. 너무 많아서 다 할 수 없을 지경이라는 행복한 고민 중에도 그의 표정에는 살짝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래도 프런코4가 훨씬 재밌었어요. 탑3 안에 들어갔다면 지금과 생각이 많이 달라졌을 거라 생각해요. 여러 가지로….” 잠깐 뜸을 들이더니 강성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참 부러웠어요. 파이널 컬렉션을 보면서 말이죠. 패션디자인을 한다면 누구나 서울컬렉션에 서고 싶은데, 그게 좀처럼 쉬운 기회가 아니에요. 그런 쇼에 바로 설 수 있다는 게 너무 부러웠어요. 그건 정말 패션디자이너에게 최고의 기회니까요.”

 

만약 탑3에 갔다면 1등을 노려볼 수 있었겠냐는 질문에 그가 답했다. “다들 색깔이 너무 달라요(웃음). 탑3 중에서는 이지승의 쇼가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미니멀리즘이나 컬러와 소재의 매치 등이 좋았죠. 치마 벨트 재킷 등 다양한 아이템의 제안이 신선했어요.”

 

 

 

“왜요? 어디가 (김수현과) 닮았는지 모르겠어요. 진짜로…”

강성도 디자이너는 첫 회부터 배우 김수현을 닮은 외모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더니 프런코 사상 전무후무한 스타로 떠올랐다. 탈락이 아쉬운 팬들을 위해 ‘리얼웨이’라는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질 정도였으니? 그는 김수현의 얘기를 듣자마자 손사래를 치며 부인하더니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외모보다는 평범하진 않은 사람인데,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더니 사람들이 감동을 받은 것 같아요. 저를 통해서 장애우를 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고 할까요. 얼마 전, 지하철에서 청각 장애우을 만난 적이 있어요. 갑자기 저한테 오더니 ‘오빠 너무 고마워요. 오빠보고 힘을 얻었어요.’ 라고 하는데 그 말이 참 고마웠어요.”

프런코4에서 그가 인기를 얻었던 것은 뛰어난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매회 입고 나오는 센스 넘치는 패션이 그의 인기에 상승세를 부추긴 데는 두말할 여지가 없었다. “아우 속상해.” 그는 힘주어 말했다. “프런코에서 대충 입을 걸 그랬어요.” 이젠 집 앞에 나갈 때도 신경이 쓰인다는 그는 “세간의 초점이 자신의 외모보다 자신의 디자인으로 옮겨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러브켓’ ‘RE;CORD’ 등의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바쁜 작업환경에 현재 보류중인 개인 브랜드 ‘앤듀엣(Anduette)’도 내년에 론칭을 앞두고 있다. 앤듀엣은 미니멀하고 모던한 여성스러운 실루엣을 추구하는 브랜드로 진행될 예정이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다만, 그의 영어 이름인 ANDEE와 SILHOUETE을 합친 브랜드 명처럼 그만의 실루엣을 기대해도 좋다고 했다.

 

 

 

“패션디자이너가 되려면 열정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기자는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대답 대신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요즘 고등학생들 꿈이 뭔지 알아요?” 그는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어갔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봤는데 패션디자이너가 고등학생이 꿈꾸는 직종 2위에 뽑혔어요. 1위는 뭔지 알아요? 연예인이에요. 연예인.” 인터뷰 내내 볼 수 없었던 격양된 어조였다. 그는 걱정스러운 어투로 “패션에 대한 환상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패션 업계 일이란 게 겉은 화려한데 뒤에서 보면 완전 막노동이거든요. 패션 관련 일을 하고 싶다면 한 번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강성도 디자이너는 “패션디자이너가 되려면 열정이 중요해요.”라고 당부의 한 마디를 던졌다. 시작이 달랐기에 지금 그의 결과는 더욱 눈부시다. 어려운 과거를 딛고 당당히 사회에 나온 그의 모습은 장애우뿐만 아니라 현실의 벽에 부딪힌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어쩌면, 그의 마지막 말은 패션디자이너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닌 우리 인생에 던지는 메시지일 것이다.

<사진=스타패션 김대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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