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디자이너인터뷰] 김성현 디자이너

[편집자 주] 한국은 패션의 변방이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요건인 ‘의식주’ 중에서 오랫동안 우리나라는 ‘식’과 ‘주’의 결핍으로 ‘의’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패션이라는 단어가 ‘입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스타일’까지 확장됐다. 이 가운데 국내 신진 패션디자이너들이 브랜드를 론칭하며, 전 세계에 한국의 패션을 알리고 있다. 이에 <스타패션>은 한국의 패션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신진디자이너들을 연재 인터뷰한다.

 



[스타패션=김민지 기자] 첫 만남, 아차 싶었다. 모히칸 헤어스타일, 팔뚝의 문신, 날카로운 피어싱 액세서리, 시종일관 시크한 표정과 말투…. “인터뷰 하러 오셨어요?” 무뚝뚝한 그의 첫 마디에 이날 인터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남자, 대화를 하면 할수록 ‘볼매남’이었다. 외모는 갱스터인데 행동은 신사다.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25살 순수청년. 자리 옆에 놓인 바나나를 기자에게 건네주며 살짝 웃을 때 드러나는 덧니와 반달눈, 요새 말로 ‘매력 돋기’. 지난 5월 22일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김성현 패션디자이너를 만났다.

김 디자이너는 케이블 채널 On Style ‘프로젝트 런웨이 Korea4’(이하 프런코4)에 출연하면서 이미 대중에게 알려진 얼굴이다. 아쉽게도 프런코4 9회 ‘아동복과 어울리는 성인 여성복을 디자인하는 미션’에서 일찌감치 탈락했지만,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디자인과 모델 뺨치는 포스와 강렬한 인상은 단기간에 그를 알리기에 충분했다.

첫 만남부터 “재수 없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난 옷을 보는 안목과 감각이 있어요(웃음)”라고 말하는 김 디자이너의 말투는 거침없었다. 스타일은 대담했고, 눈빛엔 시종일관 자신감이 가득 차 보였다. 한 마디로 그는 ‘청춘’다웠다. 도대체 그가 가진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보통 패션디자이너는 학벌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세계 3대 명문 패션스쿨’이라도 나왔을까? 라는 기자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김 디자이너의 최종학력은 한성대 중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옷을 좋아했고, 멋 부리는 것을 좋아해서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진학했지만, 학비가 없어서 그만뒀어요. 또 4년제라는 시스템 안에서 커리큘럼도 지루하고 디자이너를 양성해야하는 패션디자인과에서 교수가 디자이너가 아니라는 사실도 이해할 수 없었죠. 패션 수업을 교과서대로만 가르치는 교육방식에 신물이 났어요”라고 자신의 소신을 피력했다. 기자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정확하게 말한 그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프런코4’ 중도 탈락 ‘새로운 도약’

또 한 번 기자는 놀라웠다. 김성현은 '프런코4'에 지원하지도 않았다는 것. “일요일 아침이었나? 지인의 추천으로 섭외전화를 받고 할 것도 없는데 면접이나 보자고 갔는데 합격했어요.” 하지만 그 당시 그는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재봉을 제대로 배운 적도, 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 특히, 유학파 출신에 화려한 경력을 가진 도전자들 사이에서 국내파인 그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김 디자이너가 출연을 결정하게 된 것은 자신의 감각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프런코4’ 초중반에 다른 도전자들 눈치를 보면서 디자인을 바꾸기에 바빴다. 자신의 디자인에 확신이 없었던 것.

“안재현 형은 남들 자고 있을 시간에 먼저 일어나서 디자인 스케치를 하고 있고, 파리에서 공부했던 이야기도 많이 들려 줬어요. 형을 보고 내가 너무 나태하게 살고 있단 걸 느꼈죠, ‘프런코4’ 안에서 만든 옷이 제 평생 만들었던 옷보다 훨씬 많을 걸요.(웃음) 경미 누나랑 혜란이 누나한테서 재봉하는 것도 많이 배웠어요.”

“지금은 잘 만들어요, 혹시 모르죠. 여성복 미션에서 통과했으면 우승까지 갔을지도….(웃음)”
농담이 아니다. 그는 여성복 미션에서 두 벌의 의상을 만들었다. 그때 민트 컬러 원피스가 아닌 가죽 원피스를 입혔다면 그의 말이 맞을 수도….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그는 프런코4에 출연하면서 많은 것을 얻었다. 회를 거듭할수록 재봉 실력을 쌓는 것은 물론, 여성복 미션에서 탈락하면서 자신의 주관대로 디자인을 풀어야겠다는 확신을 얻은 것이다. 25살 청년에게 탈락은 실패가 아니라 디딤돌이 되어 더욱 성숙한 디자이너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못 입는 옷은 안 만든다”

성공하는 예술가들이 가지는 공통점이 있다. ‘고집’이다. 그도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에 대한 확고한 고집이 있었다. 당연하지 않나? 트렌드는 빠르게 변하고 패션계는 냉정하다. 승부를 벌이는 데 있어 고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김 디자이너의 패션 철학은 ‘못 입는 옷은 안 만든다’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가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을 할 거라고 착각하지만 그는 웨어러블한 옷을 추구한다. “아트적인 부분은 음악이나 영상으로 풀면 되는데 굳이 왜 옷에 표현을 하는지?”

그는 입기 쉬운, 입을 수 있는 항상 모던하고 시크한 여성상을 그린다. 타고난 디자이너다. “정말 잘 사는 나라에선 임금의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고 하잖아요, 이처럼 옷이 정말 좋으면 그 디자이너가 누군지, 어떤 수식어가 붙던지 상관없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김성현 디자이너 옷이라서 사는 게 아니라 사고 봤더니 김성현 디자이너의 옷인 거죠. 그런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대기업 브랜드 속에서 개인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해선 그는 “고객이 원하는 옷이 뭔지 파악하고 거기서 유니크함을 보여줘야 돼요, 시중에 있는 옷을 똑같이 모방해서 만들 필요는 없어요. 새로운 것을 보여주되, 자신을 색을 잃으면 안 돼요”라고 남다른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고객이 까다로우면 기술이 좋은 창작자들은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고 능력도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디자인에 자부심과 확신이 있다면, 자신만의 독특한 차별성을 두고 그 색깔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

 


◇ ‘별점 2점’ 패션디자이너

“저의 패션 별점은 2점이에요. 예전엔 정돈 안 된 스타일로 옷을 입었다면 지금은 정돈된 느낌으로 입어요. 스타일링을 하다 과해졌다 싶으면 필요한 부분만 두고 나머지는 빼니, 점점 미니멀 해진 것 같아요, 만약 인격에 점수를 매기래도 똑같이 2점이에요. 인간은 스타일도 인격도 다 변해간다고 생각해요.” 기자가 “자신의 패션에 별점을 준다면”이라는 질문에 그는 이 같이 답했다. 우문현답이었다.

또 좋아하는 명언으로 그는 “커트코베인의 말 중 ‘다른 사람으로서 사랑을 받기보다 나로서 미움 받는 게 낫다’라는 말을 좋아해요”라고 했다. 이는 자신을 포장하고 과장해서 남한테 보여준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보다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줘서 욕먹는 게 낫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김성현 디자이너는 작별을 하는 기자에게 덧니를 드러내며 한 마디 했다. “빈티지 스타일 좋아하시죠? 기자라고 편하게 다니지 마세요.”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의 자신감 있는 조언에 국내 패션계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사진=스타패션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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