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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키워드] 구찌, 지금이 '최고 전성기'[SF20] 키워드로 본 패션 브랜드
이재옥 에디터 | 승인 2018.05.31 16:13|조회수 : 28098
®구찌, 아드리안 코자키비치 (동물학자)

“이건 구짜!” 짝퉁(가품)이 많은 만큼 구찌는 명품업계에서 빠질 수 없는 브랜드입니다. 구찌는 최근 몇 년 전부터 불어온 복고(레트로) 열풍에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로고가 보이지 않는 로고리스 트렌드에서 빅로고 등 로고를 강조하는 복고 스타일이 인기를 끌면서 로고 등 구찌 티가 나는 제품이 많이 팔렸습니다. 글로벌 패션 리서치 엔진 ‘리스트(Lyst)’가 발표한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명품 제품 TOP5를 살펴보면 구찌의 ‘블룸 슬라이드(꽃무늬 슬리퍼)’(1위), ‘로고 벨트’(3위), ‘에이스 스니커즈’(4위), ‘로고 티셔츠’(5위)가 차례로 수위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매출도 역시 크게 상승했습니다. 

®빌보드 공식 sns, 구찌 제품을 입은 방탄소년단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구찌오 구찌가 가죽 공방에서 시작해서, 가족기업 그리고 패션기업 커링그룹이 운영하기까지 구찌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현재는 루이비통을 능가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 했으며, 스타들이 사랑하는 브랜드가 됐습니다. 국내에서는 래퍼 비와이가 구찌 마니아로 잘 알려져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KPOP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은  미국 무대에서 구찌 제품으로 스타일링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구찌는 밀레니얼 세대가 외면하고 있는 명품 업계에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구찌, 피렌체 매장 구찌오 구찌와 아들 로돌프 구찌

#사보이 호텔

구찌의 창립자는 구찌오 구찌입니다. 그의 집안은 예로부터 피렌체에서 가죽 제품이 아닌 밀짚모자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1987년 구찌오는 밀짚모자 제조업이 사양 사업이라고 판단하고 런던의 사보이 호텔(Savoy Hotel)에서 벨보이로 일을 했습니다. 당시 17살이었던 그는 귀족과 상류층의 기호 및 문화를 익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최고급 러기지(Luggage)에 깊은 인상을 받고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 프란지(Franzi)라는 이름의 가죽 제조업체에서 20년간 가죽 공방 기술을 익혔습니다. 이후 1921년 그는 피렌체에 있는 냐 누오바 거리(Via Vigna Nuova)에 ‘구찌’라는 자신의 이름을 딴 첫 번째 가죽제품 전문매장을 열어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구찌 공방에서는 이탈리아 귀족을 대상으로 장갑, 부츠 등 승마용품을 제작했습니다. 이것이 구찌 탄생의 첫 발자국입니다.  

#가족기업

구찌는 가족 경영을 통해 발전했고 쓴맛을 보기도 했습니다. 구찌오 구찌는 세 아들을 회사의 주주로서 경영에 참여시켰습니다. 1953년 구찌오 구찌가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첫째 아들인 알도 구찌와 셋째 아들인 로돌프 구찌가 각각 50%씩 경영권을 나눴습니다. 두 사람은 구찌오 구찌가 생전에 밀라노와 뉴욕에 구찌 매장을 열어 관리하기도 했습니다. 구찌의 전성기는 알도 구찌가 열었습니다. 그는 1961년 아버지 구찌오 구찌의 이름을 딴 GG 로고를 만들고 이를 캔버스 소재로 만들어 가방, 액세서리, 옷 등에 사용했으며 재키백을 만들었습니다. 팜비치, 비버리 힐즈를 비롯해 도쿄, 홍콩 등 전 세계에 구찌 매장을 오픈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1982년 SPA로 사업을 전환하며 로돌프 구찌가 경영권을 가지게 됩니다. 1년 뒤 로돌프 구찌가 사망한 후 마우리초 구찌(Maurizio Gucci)가 경영권을 승계했습니다. 하지만 알도 구찌의 아들 파울로 구찌(Paolo Gucci)는 크게 반발하며 파울로 구찌라는 이름으로 핸드백, 액세서리, 와인 등을 판매하는 저렴한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이탈리아 전통의 가족 경영에 위기를 불러왔고 그 사이 구찌의 재정난도 심화되었습니다. 이에 마우리초 구찌는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고 전문 경영인을 영입했습니다.

#커링그룹 

1989년 인베스트코프는 구찌 주식의 50%를 매입했고 1993년 마우리초 구찌가 자신이 보유한 50%의 주식 지분을 매각하면서 구찌는 그때부터 가족기업이 아니었습니다. 2000년, 구찌는 구찌 그룹(Gucci Group)으로 이름을 바꾸고 당시 피노 프랭탕 레두트(Pinault Printemps Redoute)였던 PPR 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맺으며 구찌를 중심으로 한 럭셔리 포트폴리오 구축에 주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찌의 모기업인 PPR 그룹(피노 프랭탕 레두트 Pinault Printemps Redoute)은 2013년 커링(Kering) 그룹으로 사명을 변경했습니다. 현재 커링 그룹은 설립자 프랑수아 피노의 아들 프랑수아 앙리 피노 회장이 경영을 담당하고 있으며 사명을 커링 그룹으로 변경한 이후 유통 사업을 정리하고 명품, 의류, 액세서리 브랜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커링그룹에는 구찌 이외에도 생 로랑(Saint Laurent),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발렌시아가(Balenciaga) 등을 소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구찌, 구찌 뱀부백

#뱀부백

대나무 손잡이가 인상적인 뱀부백은 구찌의 대표적인 제품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국이 된 이탈리아의 열악한 상황에서 가죽업체들은 자재난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이때 구찌는 보통의 피혁 대신 돼지가죽을 소재로 몸통을 만들고 일본산 대나무 손잡이를 부착한 작은 사이즈 핸드백을 만들었습니다. 손잡이는 13시간 가량 대나무에 열을 가해 둥근 형태로 구부린 것으로 말 안장의 곡선적 형태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1947년 ‘0633’이란 모델 번호로 처음 소개된 ‘뱀부백’은 빠른 시간 내에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탈리아 영화 속에 여배우들은 구찌의 뱀부백을 들고 출연해 인기는 더 치솟았습니다. 54년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 ‘이탈리아 여행(Viaggio in Italia)’에선 잉그리드 버그먼이, 66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Blow Up)’에선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뱀부백을 들었습니다. 1994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돼 3년 만에 브랜드를 회생시킨 디자이너 톰 포드가 구찌에서 처음 만든 것은 바로 ‘뱀부(Bamboo) 백’이기도 합니다. 

위키, 재키백을 든 재클린 오아시스

#재키백

과거 구찌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가방이 ‘재키백’입니다. 이는 미국의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부인 재키 케네디가 즐겨 들어 이름 붙여진 이름입니다. ‘재킷백’은 1950년대 구찌가 출시한 둥근 모서리의 숄더백으로, 재키 케네디(재클린 오나시스) 외에도 당대의 여배우들이 많이 들고 다닌 백이기도 합니다.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다 지아니니는 2009년 재키 백을 ‘뉴 재키 백 (New Jackie Bag)’이라는 이름으로 재해석하기도 했습니다. 둥근 모서리는 오리지널 재키 백을 그대로 닮았고 바이올렛, 에머랄드 등 다양한 컬러와 악어가죽, 타조가죽, 송아지 가죽 등 다양한 소재를 적용했으며 뱀부와 긴 가죽 테슬(Tassel, 술) 장식을 더해 좀 더 활기차고 강인한 분위기를 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구찌, 홀스빗로퍼

#홀스빗로퍼 (Horsebit Loafer)

구찌를 대표하는 신발은 ‘홀스빗 로퍼’입니다. 이 로퍼는 1953년 승마용 재갈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것으로, 두 개의 링과 빗장 문양이 남성용 로퍼에 장식되어져 첫 선을 보였습니다. 당시 이 신발은 높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클라크 게이블(Clark Gable), 존 웨인(John Wayne), 프레드 아스테어(Fred Astair) 등이 신기도 했습니다. 특히 1959년, 칸의 호텔 테라스에서 알랭 들롱(Alain Delon)이 홀스빗 로퍼를 신고 여배우 로미 슈나이더(Romy Schneider)와 함께 앉아 있는 흑백사진은 홀스빗 로퍼를 유명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홀스빗 로퍼는 금속 장식을 신발의 발등에 장식하는 획기적인 시도를 인정받아 메트로폴리탄박물관 (Metropolitan Museum)에 ‘디자인과 크래프트맨십의 패셔너블한 시도’라는 타이틀로 영구 전시되어 있기도 합니다. 구찌는 2013년 호스빗 로퍼의 탄생 60주년을 맞아 익스클루시브 1953 컬렉션(Exclusive 1953 Collection)을 선보였습니다. 

®구찌, 더웹

#더웹(THE WEB)

구찌를 떠올리면 GG로고만큼이나 유명한 로고가 있습니다. 바로, ‘더 웹’입니다. ‘그린-레드-그린’ 세 가지 컬러가 조화된 구찌의 더 웹은 1951년 말 등에 안장을 고정시킬 때 사용하는 캔버스 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습니다. 흔히 ‘GRG’라고도 불리며, 이를 응용한 ‘블루-레드-블루’ 컬러 조합은 ‘BRB’라고 불립니다. 더 웹은 오랜 세월에 거쳐 광범위하게 사용돼 왔습니다. 1950년대에는 여행가방, 1961년에는 재키 백, 1970년대에는 A라인 스커트에 자주 사용되었으며 프린트나 가죽 패츠워크로도 변형됐습니다. 1961년에 처음 선보인 GG 로고와 더불어 구찌의 제품임을 한눈에 각인시키는 구찌의 홀마크(Hallmark, 품질보증마크)로 사용됨과 동시에 특유의 스포티한 분위기로 구찌의 젊고 세련된 감각을 상징하는 아이콘(Icon, 상징)이 됐습니다.

®구찌, 플로라 패턴

#플로라(Flora)

구찌의 대표적인 패턴 중 하나가 ‘플로라’입니다. 이 플로라는 모나코의 왕자비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를 위해 만든 패턴입니다. 1966년 그레이스 켈리는 남편인 모나코 레니에(Rainier III) 왕자와 함께 밀라노 구찌 매장을 방문해 그린 컬러의 뱀부 핸드백을 구입했습니다. 당시 로돌프 구찌는 그레이스 켈리에게 선물하고 싶으니 제품을 하나 더 고르라고 권했습니다. 그레이스 켈리는 스카프를 원했지만 구찌에는 스카프가 없었습니다. 이에 로돌프 구찌는 일러스트레이터 비토리오 아코르네로(Vittorio Accornero)에게 스카프를 디자인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다음 날 비토리오 아코르네로는 사계절을 대표하는 꽃과 열매, 곤충이 어우러진 일러스트를 가지고 왔고 이렇게 구찌 플로라가 탄생됐습니다.

+디아만테 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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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재옥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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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하늘에도 있고 거리에도 있다. 패션은 인간의 관념이며, 살아가는 방식이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세상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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