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패션브랜드

“LA 비버리힐즈 채널 매장” 지금은 잊혀 진 국내 SNS인 ‘싸이월드’에 한 여성이 샤넬 매장 앞에서 사진을 찍고 ‘채널’이라고 남긴 일이 있습니다. 샤넬(CHANEL)은 프랑스어이므로 샤넬이라고 읽습니다. 패알못(패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CHANEL이 CHANNEL(채널)과 비슷해 채널로 읽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전형적인 고급 여성의 이미지를 생각하게 하는 브랜드가 샤넬입니다. 하지만, 샤넬은 얌전하고 정숙한 여성 대신에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현대적인 여성을 위한 실용적인 옷으로 패션계에 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즉, 정형화된 여성의 이미지를 해방시킨 이가 샤넬을 만든 창업자 코코 샤넬(1883~1971)입니다. 

샤넬로고

#코코샤넬

샤넬의 창업자 코코 샤넬은 본명이 아닙니다. 가브리엘 샤넬이 본명이며, 코코라는 애칭에 샤넬을 붙인 것입니다. 재봉사 일을 그만두고 샤넬이 카페에서 가수로 활동하면서부터 ‘코코 샤넬’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샤넬이 부른 '코코리코(KO KO RI KO)', '누가 코코를 보았나'라는 노래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끌면서 '코코(CO CO)'라는 애칭을 얻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샤넬은 당시에 ‘코코’라는 애칭을 좋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샤넬넘버5

#샤넬넘버5(No.5)

“(잠 잘때) 샤넬 No.5를 입는다.” 당대 최고의 섹시 심벌로 알려진 할리우드 배우 마릴린 먼로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일화는 샤넬 넘버5를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샤넬의 향수인 No.5는 1920년대에 발매됐으며, 최초의 인공향 향수로 유명합니다. 향수 역사상 최초로 번호가 붙여진 향수이기도 합니다. 또한 최초로 알데히드(휘발성 물질)를 사용한 향수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샤넬은 전설적인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에게 첫 향수 제작을 의뢰해 1부터 5까지의 숫자가 붙은 샘플과 20부터 24까지의 숫자가 붙은 샘플을 요구했습니다. 샤넬은 이 가운데 5번 샘플을 선택했고, 이를 넘버5라 명명했습니다. 특히 샤넬은 개인적으로 5를 행운의 숫자라고 여기며 좋아했다고 합니다. 샤넬은 5월 5일에 샤넬 넘버5의 발표회를 가졌다고 합니다. 

®샤넬, 2.55백

#2.55백

샤넬의 대표적인 백인 2.55백은 최초로 어깨에 매는 가방이며, 여성들의 양손을 자유롭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955년 2월 샤넬이 이 가방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름을 2.55라고 지었습니다. 특히 2.55는 샤넬의 고아원 생활이 묻어난 가방입니다. 1983년에 태어난 샤넬은 12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고아를 기르는 수녀 학교에서 자랐습니다. 이때 고아원의 경비원이 차고 있던 열쇠 꾸러미의 사슬을 모티브로 금속 재질의 손잡이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안감의 버건디 컬러는 고아원의 유니폼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2.55백은 80년대 만들어진 CC로고로 락을 꾸몄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마드무아젤 락(mademoiselle lock)이라고 불리는 락으로 락을 만들었습니다. 

®샤넬, 리틀블랙드레스

#리틀블랙드레스 

“The Chanel ‘Ford’” 샤넬이 1926년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 내놓았을 때 미국 패션매거진 보그(vogue)는 이렇게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 의상의 대량생산 가능성을 미국 포드사의 자동차에 비유한 것입니다. 이처럼 리틀 블랙 드레스는 전체적으로 튜블러 형태의(tubular) 실루엣에 앞쪽의 상하에 사선의 핀턱이 잡혀 있는 단순한 디자인으로 복제를 통한 대량 생산이 용이했습니다. 특히 리틀 블랙 드레스는 기존에 주로 상복으로 사용되던 검은색을 여성의 일상복에 도입했다는 데에 패션 디자인사상 혁신적 의미를 갖습니다. 또한, 철저히 장식성이 배제된 샤넬의 검은색 의상은 여성 점원과 상류층 여성의 구분을 모호하는 등 의복에서 성별 및 계급과 관련된 고정 관념을 전복시킨 획기적인 시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펜디, 수지와 칼라거펠트

#칼라거펠트

‘세계에서 가장 멋진 할아버지’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1933.9.10.~)는 현재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이며, 1971년 가브리엘 샤넬이 세상을 떠난 뒤 샤넬을 오랫동안 이끌었습니다. 1982년 9월 칼 라거펠트의 샤넬 영입이 공식 선언될 때 독일인과 기성복 디자이너인 탓에 많은 이들이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샤넬에 시계&주얼리 매장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스킨케어 등 뷰티로 영역을 확장, 레디투웨어(기성복) 종류도 늘리며 샤넬이 다양한 분야를 확장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브랜드의 철학과 역사, 가치 등을 보여주는 전시회로 샤넬을 전 세계로 확장하기도 했습니다. 칼 라거펠트 때문인지, 아직도 샤넬은 다른 명품 회사들과 달리 비상장회사이며 리치몬드그룹이나 LVMH같은 거대그룹에 들어가 있지도 않습니다. 

#할머니 브랜드

루이비통 등 다른 명품 이상의 격을 지닌 샤넬은 유럽에서 ‘할머니 브랜드’라는 인식이 강한 편입니다. 유럽에서 샤넬은 과거에도 명품의 대명사이었기에 할머니들이 하나씩 소장한 빈티지 재킷과 가방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즉, 할머니들이 입던 옷이나 가방을 물려받은 촌스러운 스타일로 대변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타 패션하우스는 이런 전통적인 분위기로 경애와 존경을 표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샤넬, 사진작가 로베르 두아노가 캉봉 거리 매장에서 찍은 샤넬의 모습(1954).

#스파이샤넬

코코 샤넬이 나치의 스파이였다는 충격적인 설이 있습니다. 실제 1944년 프랑스가 독일에서 해방된 후 샤넬은 나치에 협조한 혐의로 조사받았습니다. 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습니다. 최근에 코코 샤넬이 2차대전 중 독일에게 협력한 스파이였음을 증명하는 문서가 발견됐습니다. 지난 2017년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더 넘버5 워’(The No 5 War)에 따르면, 샤넬은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했을 당시 귀족 가문 출신으로 13세 연하남인 독일군 장교 한스 권터 폰 딩크라게와 사랑에 빠졌고, 그에게 동업자이면서도 유대인인 베르트하이머 형제의 브랜드 소유권을 빼앗아달라고 부탁하고 스파이 활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코코 샤넬이 독일측 스파이였다는 사실이 여러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샤넬 브랜드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생기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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