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치 코트의 탄생과 명품 ‘버버리’ 이야기

®스타패션DB, 이성경 버버리 트렌치코트

제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895년(보어전쟁), 영국군은 남아프리카에서 트란스발 지역 공격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기상 상태는 좋지 않았다. 폭우 때문에 병사들은 방수복을 입고 싸워야 했다. 하지만 방수복이 무거웠던 탓에 병사의 움직임은 평소와 같지 않았다. 작전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없었다. 영국군은 좀 더 가벼운 방수복이 필요했다.

그때 토마스 버버리는 18, 19세기에 영국의 양치기나 농부, 마부들이 눈이나 비가 올 때 옷 위에 걸치던 ‘스목프록’이라는 코트의 원단을 발전시켜 ‘개버딘’이라는 원단을 제작했다. 개버딘은 스페인어로 ‘순례자가 입는 겉옷’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개버딘은 미리 면사를 방수 처리하여 직조한 후 또 한 번 방수 처리를 해 방수 기능이 뛰어났다. 더운 날씨에 열기도 막아주는 보온력도 훌륭했다.

®버버리

개버딘에 대해 소문을 들은 영국군은 토마스 버버리에게 방수복을 의뢰했고, 현재 봄 패션하면 빠질 수 없는 ‘트렌치코트’의 시초인 ‘타이로켄’이라는 군용 방수복이 탄생했다. 또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영국군은 참호전에 맞는 새로운 장교복이 필요했다. 때문에 영국군은 버버리에 다시 주문을 했다. 다시 군용 코트 제작을 맡게 된 버버리는 기존의 타이로켄을 참호전에 맞도록 개조했다.

버버리 군용 코트는 더블 단추로 앞을 여미고, 총을 메었을 때 마찰이 많은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어깨에서 가슴 부위까지 건 패치(Gun Patch)를 달았다. 또, 먼지와 이물질이 들어갈 수 없도록 손목 부위를 벨트로 조였다.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에서 장교들이 꼭 입고 나오는 복장을 상상하면 된다.

®버버리

공식 군복으로 채택된 버버리 코트는 수십 만 명의 장교복으로 활용됐다. 전쟁이 끝나고도 장교들은 코트를 자신의 집으로 가져가 일상생활에서도 입었고, 대중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리하여 장교복을 일반인에게도 판매를 하게 된 것이다. 이는 버버리 하면 떠오르는 ‘버버리 코트’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 된다. 버버리 코트는 유행과 계절에 영향을 받지 않는 클래식 디자인으로 영국인들은 대대로 물려주기도 했다. 또 1920년대 탄생한 버버리의 시그니처인 ‘노바 체크’는 트렌치코트의 안감으로 처음 사용된 것이기도 하다.

이후에도 버버리는 1940년대 영화들의 주인공이 입고 나오면서 큰 성공을 거둔다. 일명 요즘 소위 말하는 PPL를 통한 스타마케팅이 버버리가 패션 업계에서 큰 입지를 다질 수 있도록 한몫 했다. 영화 ‘애수’, ‘카사블랑카’ 등 당대 최고의 영화의 주인공인 비비안 리, 로봇 테일러, 험프리 보가트 등이 버버리 코트를 입고 출연했다. 뿐만 아니다. 배우 이외에도 윈스터 처칠, 조지 부시, 빌 클린턴이 버버리 코트를 즐겨 입었다.

®버버리

하지만 버버리도 한 번의 큰 고비를 겪었다. 버버리 체크는 쉽게 모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미테이션 제품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특히, 버버리는 판매를 늘리기 위해 버버리 제품을 원하는 숍이라면 누구에게나 제품을 공급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고급 백화점들은 고급스러운 그들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버버리를 매장에서 퇴출시켰다. 또 그 당시, 영국에서 건달(양아치) 패션족인 ‘차브족’이라는 청소년 세대가 등장했는데 그들이 버버리 모자를 쓰고 클럽과 밤거리에서 시비를 걸며 활보했다. 이 때문에 클럽과 펍에서는 버버리 체크 모자를 쓰면 매장 안으로 못 들어오게 막기까지 했다. 이때 버버리 탄생 이후 사상 최대의 위기였다.

위기 속에서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버버리의 CEO로 뉴욕의 삭스피스 에비뉴의 여사장이었던 ‘로즈마리 브리보’가 취임하면서 버버리는 새 전환점을 맞게 된다. 오히려 옛것을 살리면서도 트렌드에 맞는 새로운 버버리가 탄생한다. 남성 위주의 코트만을 만들었던 버버리는 여성의 몸매 라인을 살려 트렌치코트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체크무늬 색상도 핑크, 하늘색 등 다양하게 출시했다. 심지어 버버리 강아지 옷, 브래지어도 출시하며 소비자의 폭을 확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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